사소한 차이가 차별로..가정과 학교 현장인식 달라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다문화 가정 학부모인 이 모(32)씨는 지난해 5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이스마엘(11)이 급우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뒤 캐나다 이민 계획을 앞당기기로 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랄 때까지 한국에 살려 했지만 아들은 끔찍한 경험을 잊지 못한 채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서 떼지 못했다. 그럭저럭 2학기를 마쳤지만 아들은 지난달 30일 개학 후 다시 등교를 거부했고, 담임선생님이 집까지 찾아와 설득한 뒤에야 마지 못해 학교에 갔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사건 후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한 달 전 검사 결과 우울증에 별 차도가 없었다"면서 "올 가을 캐나다 학기 개시에 맞춰 이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이스마엘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도 잘 하고 한국 학생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반에서 가장 재수없는 아이'로 찍혀 왕따의 표적이 됐다. "다른 애들과 피부색이 달라 그런 것 같다"며 이스마엘은 친구들에게 당한 상처를 잊지 못했다.

이스마엘 사건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겪는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대부분 이주 1세대인 부모와 달리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국인이다. 그러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부모가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보다 쉽게 왕따의 표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아직 다문화 학생을 가르친 교육 경험이 적은 일선 학교에서는 다문화 학생의 고충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하고 소홀히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문화 가정과 학교가 느끼는 체감지수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스마엘이 다니는 학교의 교감은 "다문화 아동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했고, 지금까지 이 학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별 문제 없이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또 한국 물정에 밝지 못한 결혼이주민들은 한국말이 서툰 데다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학교측에 자신의 입장이나 요구를 전달하지 못하고 참고 지낼 때가 많다.

다문화 가정 중 부모가 모두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맞벌이도 적지 않아 자녀의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다가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결혼 혹은 취업을 위해 한국에 온 부모를 따라 뒤늦게 중도 입국한 외국 태생 자녀는 대부분 한국말도 서툴러 아예 학교 밖에 방치되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외국 태생 중도입국자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초ㆍ중ㆍ고교생 가운데 42%가 우리말 발음이 서툴러 따돌림을 받았다고 응답했고, 피부색 때문에 놀림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25%에 달했다.

다문화 학생들만 다니는 광주의 초중고 통합형 대안학교인 새날학교 송미혜 교사는 "외국에서 갓 들어온 학생은 새날학교에서 먼저 우리말을 배운 뒤 일반 학교로 전학가고 싶어 한다"며 "하지만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경우 내국인 학생들과 차이가 커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새날학교로 되돌아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민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며 결혼이주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학교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은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왕따 현상을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또래의식 정도로 그냥 넘기지 말고, 기성세대의 편견과 비뚤어진 사회 문화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며 "다문화 가정 아이들만을 위한 대책이 아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회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피부색, 언어 등 때문에 소외당한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인터넷중독에 빠지는 문제도 교육당국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대응부의 엄나래 선임연구원은 "다문화 가정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이 일반 가정 청소년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부모 가정 아이 등에 국한돼 있는 가정방문 지도를 다문화 가정 아이들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선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화 교육과 별개로 국가별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문화 아이들이 한국 사회를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부모 나라에 대한 교육을 통해 자기 자신과 부모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2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임시 교사를 마련해 개교한 한국다문화학교 개교식 및 입학식에서 다문화학교 학생들이 합창하며 개교를 자축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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