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거리의 `원조'..하루 5천여명 외국인 찾아

이슬람식 포함 다양한 식당도 즐비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서울의 다문화 거리 가운데 원조를 꼽으라 하면 당연히 용산구 이태원동을 떠올린다. 이태원 지역은 한국전쟁 후 인근에 용산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1970년대 초반 미군 후송병원이 생겨 병원 종사자와 주변 상인이 함께 옮겨오면서 지금 모습의 틀을 갖췄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 문화 일색이었던 이태원은 1990년부터 미국인 이외에 아프리카 여러 국가와 필리핀과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다문화 분위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7년 이 일대가 서울의 첫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지금은 하루 약 5천명의 외국인이 찾는 대표적 다문화 거리로 변모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아프리카와 아랍계 주민들이 이태원 중앙에 있는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을 찾고 중앙성원 인근 지역에 살기 시작하면서 이태원이 한국에서 드문 이슬람 색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슬람교서울중앙성원 전경. 중앙성원 제공>


이슬람교 기도회가 열리는 매주 금요일 낮에는 서울중앙성원에는 아랍어로 코란을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성원 입구 골목길에는 이슬람교도가 지켜 먹는 '하랄' 음식재료를 파는 슈퍼마켓과 식당 등 10여개 상점이 들어서 있다.

이 성원은 1975년 이슬람권 국가들과 우호 증진을 위해 지은 것으로 사원을 비롯해 한국이슬람문화여구소, 한국무슬림학생회, 아랍어 연수원 등을 갖췄다.

아프리카 수단 출신으로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서 일하는 이마드 엘딘 자우하르(49) 씨는 "코란을 읽는 소리를 들으면 고향에 온 기분이 든다"며 "비록 서울이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으나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하는 소리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기분을 좋게한다"고 말했다.

이태원과 인접한 보광동에서 10년째 사는 이마드 씨는 "고향 친구들과 모국어로 얘기하고, 아랍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으며 사원에서 기도하며 종교 생활을 지켜갈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곳에 옮겨가 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슬람의 방식으로 소와 양, 닭 등을 도축한 고기로 요리한 음식점이 많다는 점도 한국에 사는 이슬람교도가 이태원 주변에 몰려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랄은 동물의 급소를 찔러 고통을 최소화한 다음 피를 흘려낸 도축 방식으로 이슬람교도는 하랄 방식에 따른 음식만 먹어야 한다.

2008년 모로코 대사관저 주방장이 문을 연 '마라케쉬 나이트'를 비롯해 페르시아 스타일의 '알사바', 바비큐 전문 음식점인 '페트라', 이집트식 음식점, 팔레스타인식 음식점, 이라크식 음식점 등 5-6곳이 영업 중이다.

<음식점 '마라케쉬 나이트'에 나온 모둠 케밥과 샐러드 요리>


이들 음식점은 모두 코란의 율법대로 도축한 쇠고기와 양고기, 닭고기를 쓰며 조밥과 케밥, 전통 차, 샐러드 등을 팔며 심지어 아랍 스타일의 물담배를 맛볼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 근처의 '술탄 케밥'은 양고기와 쇠고기 등을 저며 꼬치에 꿰어 굽고 나서 얇게 썰어 밀가루 전병처럼 만든 피에 싸 먹는 케밥을 판다. 케밥을 사려는 줄에는 아랍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들도 눈에 자주 띈다.

인근 녹사평역 사거리에서 제일기획 쪽까지 약 800m 구간의 이태원로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여러 나라의 음식을 파는 식당과 바가 들어서 있다.

수제 버거를 파는 '칠리 킹'을 비롯해 아일랜드식 술집인 '울프 하운드(Wolf Hound)', 이탈리아 피자를 전문으로 한 '피자 필(Pizza Peel)', 호주 스타일의 '토니스 오시 바(Tony's Aussie Bar)', 태국 요리를 파는 '왕 타이(Wang Thai)', 캐나다 스타일의 바 '로키 마운틴 테이번(Rocky Mt. Tavern)' 등의 간판이 '큰 옷(Big size)'이라는 간판과 한국 토산 기념품, 전자 제품 상점 간판 등과 함께 섞여 내걸려 있다.

심지어 다문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 카페도 3-4개가 이태원역에서 보광초등학교 쪽으로 난 도로변에 들어서 있다.

이들 상점의 간판에는 오히려 한글을 찾아보기 드물 정도다.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태국어 등 외국어로 쓴 간판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태원 지역을 소개한 안내도>


<영어로만 된 메뉴 입간판>

북아프리카와 중동 출신의 사람이 많이 몰려 사는 이유는 이들이 이슬람 신도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마드 씨의 설명.

"이슬람교를 믿는 순간 모두가 형제가 됩니다. 또 15세기 대 제국을 이뤘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 페르시아 일대, 멀게는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아랍어를 썼기에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명지대학교에서 아랍어를 8년간 가르쳤던 이마드 씨는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서 '경제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이슬람 신도가 몰려 살다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도 지난해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서 이태원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조민행 이슬람교서울중앙성원 사무국장은 "서울은 물론 먼 곳에 사는 이슬람 교인들이 금요일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찾는다"며 "약 800명의 무슬림이 모이며 중동 지역은 물론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교관과 유학생 등이 다수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무슬림은 "한국에서 무슬림에 대한 오해가 크고, 특히 기독교 신자들은 싫어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며 "종교의 자유가 있는 한국에서 종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 여성이 쓰는 히잡을 두고 헐뜯는 소리를 들었다며 "히잡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신앙의 상징일 뿐"이라며 "무슬림 문화를 존중하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tsy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