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문화센터

- '베트남댁' 진성희(짠띠짱)씨의 행복한 설맞이

[데일리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진성희(27) 씨는 경기 오산 진 씨의 시조다.

지난해 설을 보름여 앞둔 1월21일 주민등록증을 받으면서 함께 손에 쥔 선물이다. 진 씨의 베트남 이름은 짠띠짱. 이름이 두 개인 그는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 연착륙하는 데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진 씨는 제2의 고향 한국에서 올해로 다섯 번째 설맞이를 한다. 남편 신수철(42) 씨와 두 딸 희유(4) 은경(2) 양에게 어느 해보다 특별한 설을 안겨 줄 자신감에 차 있는 이유다. "2년 전부터 설 음식 마련을 위한 장을 혼자 봐요. 무슨 음식을 얼마나 할지 시어머니와 먼저 상의하고 장을 봐 오면 함께 만들죠."

진성희 씨에게 한국의 설 풍경은 이제 몸에 밴 습관처럼 익숙하다. 그는 주로 재래시장을 이용한다. 필요로 하는 재료를 쉽고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인들과도 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점도 포함된다.

"요샌 물가가 가장 큰 이야깃거리죠. 상인들도 장사가 잘 안된다고 걱정이 많고요. 그래도 설을 앞두고 활기 넘치는 모습은 변하지 않아요. 집에 돌아와서도 장을 보며 있던 일들을 시어머니, 남편에게 들려줘요."

어느 집과 다를 바 없는 진 씨의 설 풍경이다. 2007년 한국에 온 진 씨는 세 번째 설까지는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이다.

"설 음식, 예절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구요. 시어머니가 하시는 걸 보며 노트에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죠. 떡국은 어떻게 끓이는지, 제사 땐 뭘 준비해야 하는지를요. 남편이 외아들인데, 며느리 역할을 톡톡히 해야 한단 마음도 컸어요."

진 씨는 혹시 빠뜨린 음식은 없는지, 시댁 식구들에게 실수한 건 없는지 앞가림에 바빴다. 장을 보는 일도 시어머니가 항상 같이 가 하나하나 일러줬다. "혼자 가면 품질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싸면 사오니까 걱정이 많으셨죠. 지금 생각하면 재미난 추억입니다." 처음 맞은 설에는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세배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베트남에서는 제사 지낼 때 외에는 절을 하지 않아요. 새해 첫날에는 어른들이 덕담을 해 주시는 걸로 서로 인사를 하거든요. 지금이야 그 의미를 알고 있으니 그렇지 당시에는 정말 놀랐어요."

설날이면 진 씨 가족은 시어머니, 시누이 내외와 그 아이들을 포함해 1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떡국을 먹고 새배를 주고 받는다. 반가운 손님도 한 명 맞이한다. 2008년 취업비자로 한국에 와 경기 화성시에서 일을 하는 친오빠다. "새해 첫 날은 시댁 가족과 지내고 둘째 날 오빠를 집에 부르거나 만나러 가요. 남편과 아이들도 좋아하니 서로 만나면 마냥 즐거워요." 바쁜 설을 보낸 진 씨는 인근에 사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들과 조촐하게 고향식 설을 즐긴다.

"설 연휴에는 서로 바빠서 만나기 힘들죠. 연휴가 끝나면 언니 2명과 함께 베트남 음식도 해먹고 한국생활에서 알게 된 정보도 주고 받아요." 그들의 화제는 단연 고향의 설 이야기다.

"베트남에서는 설날에 찹쌀을 쪄서 뭉치고 그안에 고기와 녹두를 넣은 '뱅쯩'과 월남쌈을 먹어요.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 때 월남쌈을 예쁘게 싸면 예쁜 아기를 낳는다고 하죠."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새싹을 따 제사상에 올린다. 새싹처럼 한해를 잘 보내길 바라는 풍습이라는 게 진 씨의 설명이다. 진 씨는 올 설에 특별한 일정이 있다. 서울에 사는 시할머니에게 새해 인사를 가는 것이다. "결혼 첫 해 잠깐 뵈러 갔었는데 설에 찾아뵙는 건 처음이죠. 아흔을 훌쩍 넘기신 시할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새배를 드릴 겁니다."

◈ "시어머니는 한국어 스승이자 든든한 조력자" 결혼이주여성 진성희 씨는 한국에 먼저 시집 온 친척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2007년 7월 경기 오산시에서 살림을 차렸다. 많은 게 생소했다. 과일을 깎을 때 베트남과 달리 밖에서 안으로 칼질을 하는 게 너무 위험해 보였고 '술고래' 남자들에게도 놀랐다. 낮잠을 잘 수 없다는 건 괴로움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낮엔 너무 더워서 되도록 집밖에 나가지 않아요. 그래서 낮잠을 즐기죠. 한국에 처음 와서는 시어머니께 공부한다 하고는 책을 펴 놓고 졸기도 했어요.(웃음)"

시어머니는 진 씨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진 씨가 큰딸 희유 양을 낳고 2008년 6월 분가하기 전까지 11개월 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이가 시어머니다.

"덕분에 한국어를 많이 배웠어요. 남편이 회사에 가고 종일 시어머니랑 단둘이 있을 때면 같은 단어를 수십 번 되풀이하셨죠. 그땐 '너무 그러시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맙죠." 진 씨의 남편 신수철 씨는 2007년 10월 한국에서 치른 결혼식에 앞서 5월 베트남에서 올린 전통혼례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결혼식은 뒤풀이까지 이틀 동안 이어졌죠. 처가가 꽤 넓었는데도 이웃집 두 채를 빌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어요. 음식도 마을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나눠 먹었죠. 사라져 가는 한국의 품앗이를 보는 듯했어요." 베트남 문화를 이해하는 남편의 응원으로 진 씨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을 돕는 일에도 힘을 쏟는다.

그는 언어, 문화 차이를 극복하려고 정부와 지자체의 교육·문화·복지 프로그램을 꾸준히 들었다.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결혼이주여성의 삶도 대변했다. 2009년 한국어능력시험 3급·한자자격증 9급·운전면허·국가공인정보기술자격증을 땄다. 2010년에는 한국외대 통·번역 교육과정도 수료했다.

이를 활용해 경기 화성 외국인노동자센터, 한국산업인력공단, 오산종합사회복지관 등에서 이주민을 위한 통·번역 업무를 봤다. 오산시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문을 열면서 2010년 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통·번역사로도 일했다. 친정어머니의 도움도 컸다. 진 씨는 둘째 은경 양이 태어나면서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칠순의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봐달라 하기에는 면목이 없었다. 결국 남편과 의논한 끝에 베트남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진 씨의 어머니는 2010년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1년 넘게 희유 은경 양을 돌봤다. 이때 희유 양은 베트남 말이 유창해졌다. "희유가 돌을 넘길 무렵부터 베트남어를 조금씩 알려줬죠.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볼 때 베트남어로 말하다보니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우리 가족의 자랑거리죠."

진 씨와 그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눌 때 희유 양은 아빠의 통역사 역할을 했다. 진 씨가 만나는, 한국어에 서툰 베트남 출신 이민자들과도 자연스레 대화를 나눈다. 진 씨 가족은 물론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 사이의 소통의 폭을 넓히는데 희유 양도 한몫 하는 셈이다.

◈ 지금 다문화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 씨는 말이 서툴던 초창기 장을 보러 가면 얼굴이 붉어지기 일쑤였다. 얼마냐고 물으면 "살 거야? 이거 비싼데"란 식의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잘 못할 뿐이지 다 알아듣는 입장에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과 시민단체의 사회운동 등으로 지금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나아졌어요. 다문화가족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점도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다문화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다문화가족이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소통 부족입니다. 불화가 생긴 다문화가족을 찾아가 통역을 하다보면 말이 통하지 않아 오해가 커진 경우가 대다수죠."

다문화가족 구성원 간 소통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결혼이주여성이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언어·문화·자기계발 교육을 듣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지자체들이 다양한 교육을 마련해도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외부 활동을 막아 못 듣는 경우가 많아요. 정부와 지자체가 이주민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면 결과적으로 다문화가족 내 소통도 강화될 겁니다." 고등교육권이 제한되는 점도 문제다. 진 씨는 베트남 내 통계전문대학에서 통합통계·경리학을 배웠다.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려고 방송통신대학에 입학을 신청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두 달여 간 고생만하다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본국에서의 학력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국제협약을 맺지 않아 등록금이 싼 국립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워요. 베트남 학교에서 받은 졸업장을 영어, 한국어로 번역해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도장을 받고 다시 한국 주재 베트남대사관에서 도장을 받아 대학에 제출하는 식으로 비용도 만만치 않죠."

진 씨는 비슷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걸 인터넷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주여성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대책이 필요합니다."

jinuk@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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